위기 감시
이란의 격동적인 한 세기, 현재의 교착 상태로 이어지다
이란은 자국의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 에너지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국내 복지보다 대외 영향력 확대를 우선시하는 정권 아래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국민의 불만이 커져가는 가운데서도, 이란은 러시아의 핵심적인 기술·외교 지원에 힘입어 무기급 우라늄 농축을 계속 추진해 왔다.
![2026년 7월 8일 나자프에서 열린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 행렬에서 추모객들이 (오른쪽부터) 이슬람 공화국 창시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피살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그리고 현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모습이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카셈 알카비/AFP]](/gc7/images/2026/07/11/56968-afp__20260708__b9kw3yw__v2__highres__topshotiraqiranusisraelfuneral-370_237.webp)
글로벌 워치 |
현대 이란의 정치적 긴장은 급속한 근대화와 전통적 권위 사이의 20세기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1920년대 팔라비 왕조가 추진한 중앙집권화 정책은 인프라 구축과 사회 변화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권력 집중을 초래하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사회적 긴장은 결국 1979년 이슬람 혁명과 오늘날까지 이란을 통치하는 신정 체제의 성립에 중요한 배경이 됐다.
팔라비 왕조 치하에서 이란은 하향식 근대화를 추진했으며, 레자 샤는 권력을 중앙에 집중시키고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여성의 사회적 기회를 확대하는 세속 개혁을 추진했다.
레자 샤의 아들인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1941년 즉위 이후 이러한 근대화 노력을 한층 가속화하고, 특히 1963년 백색혁명 을 통해 이를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문해율이 크게 향상됐고 도시 인프라 또한 대폭 확충됐다.
![2026년 7월 6일 헤이그의 네덜란드 의회에서 열린 이란 정세 관련 원탁토론에 참석한 이란 마지막 국왕의 아들이자 반정부 인사인 레자 팔라비 왕자(왼쪽)가 언론을 상대로 발언하고 있다. [필 네이하위스/ANP/AFP]](/gc7/images/2026/07/11/56967-afp__20260706__b9eg9j6__v1__highres__netherlandsiranparliamentdiplomacy-370_237.webp)
그러나 이러한 급속한 사회 변화는 농촌 인구의 대규모 이동을 초래했고, 권력층과 연계된 엘리트들에게 부가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 축출 사건은 외부 세력 개입에 뿌리 깊은 불신을 남겼다.
혁명과 신정 체제
이러한 압박은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왕정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연합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기여했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성직자들이 국가를 감독하는 통치 구상을 제시했으며, 이는 종교적 전통주의자들뿐 아니라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에게도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대규모 시위로 국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샤는 1979년 1월 국외로 떠났으며, 호메이니는 몇 주 후 이란으로 돌아왔다.
국민투표를 통해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됐고, 국가의 최종 권한은 최고지도자에게 귀속됐다. 이후 강경파가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혁명 초기의 연합 세력은 분열됐다.
1979부터 1981년까지 지속된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은 이란의 서방과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켰다. 1980년 이라크의 침공은 8년에 걸친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수십만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고,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영향력도 더욱 확대됐다.
전쟁 이후에도 국가 권한은 계속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돼 왔다. 선거로 선출된 기관들은 헌법 수호 위원회와 이슬람 혁명수비대를 비롯한 비선출 기관들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이란은 자국의 핵 프로그램이 원자력 에너지 개발을 위한 평화적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란은 민간 사용 수준을 훨씬 넘어선 고농도 우라늄 농축을 추진해 왔으며, 이는 강압과 핵 위협, 역내 불안정을 노리는 핵무기 개발 의도와 맞닿아 있는 행보다. 이는 강압과 핵 위협, 역내 불안정을 노리는 핵무기 개발 의도와 맞닿아 있는 행보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러시아의 기술과 기반시설 지원에 의존해 왔다. 러시아는 부셰르 원자력발전소를 완공하고 핵연료를 공급했으며, 핵심 부품과 외교적 지원도 했다.
이러한 협력은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서도 테헤란이 핵 활동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했다. 특히 이란이 서방의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협력국을 모색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심화됐다.
이란은 또한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팔레스타인 지역에 걸쳐 동맹 무장단체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러한 활동은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로 하여금 핵 문제와 지정된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이유로 대이란 제재를 계속 유지하게 했다.
국내 차원의 정책적 유연성을 제한하는 동일한 제도적 구조는 역내 안보 위험을 증대시키는 대외 행보로도 이어져 왔다. 이란은 탄도미사일, 드론, 그리고 지역 내 대리 세력을 활용하는 군사 역량을 발전시켜 해상 교통로를 위협하고 주변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이러한 군사적 역량은 고농도 우라늄 농축과 결합되면서 핵확산 위험을 초래하고, 사태가 급속히 확전될 가능성을 높인다. 서방과 역내 국가들은 이러한 활동이 자국의 안보 이익을 직접적으로 겨냥한다고 판단해 제재와 방위 협력으로 대응해 왔다.
전략적, 국내적 대가
이란에서는 정권 생존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지속적인 경제적 어려움과 억압을 낳았고, 이는 정권의 대외 모험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몇 년간 물가상승률은 종종 30%를 넘어섰다.
통화 가치는 급격히 하락했고,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의약품과 생필품 부족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교육 수준이 높은 시민 수백만 명은 해외로 이주했다.
국민들의 불만은 여러 차례의 대규모 시위를 통해 표출돼 왔다. 보안군은 2019년 11월 연료 가격 인상과 경제 상황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약 1,500명을 사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생활비 부담과 사회적 제약을 둘러싼 시위에서도 체포와 무력 진압이라는 유사한 양상이 이어졌다.
이란의 정책 결정은 일관되게 국민의 복지보다 정권 보존과 대외적 영향력 확대를 우선시한다. 이러한 내부 통제와 대외적 영향력 행사의 결합은 정권의 우선순위가 자국민과 역내 안정을 모두 위태롭게 하는 악순환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란을 경제적 통합과 협력보다는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와 비대칭적 수단을 통한 대외 압박 능력에 더욱 의존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 결과 미국과 동맹국들과의 대립은 좀처럼 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 긴장은 이란 내부에서도 국가의 우선순위와 국민의 기대 사이에 존재하는 해소되지 않은 괴리를 드러내며, 시위와 정부의 탄압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지속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