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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협의 러시아 '유령 유조선', 유럽 안보 위협 고조

대러 제재 대상인 러시아 유조선 '그림자 선단'이 영국 해협에 침투하며 법적 허점을 악용해 모스크바의 전쟁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월 25일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 소속으로 의심되는 유조선 '그린치(Grinch)'가 마르세유 포스항 인근 마르티그 해안에서 포착됐다. [티보 모리츠/AFP]
1월 25일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 소속으로 의심되는 유조선 '그린치(Grinch)'가 마르세유 포스항 인근 마르티그 해안에서 포착됐다. [티보 모리츠/AFP]

글로벌 워치 |

세계 최대 해상 교통 요충지인 영국 해협이 러시아 그림자 선단의 주요 통항로로 전락했다. 이들 유조선은 대러 제재 감시망을 벗어나 불법 거래를 이어가고자 위장 국기를 게양한 채 운항한다.

올해 1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Guardian)은 해운 정보업체 로이즈 리스트 인텔리전스(Lloyd's List Intelligence)의 분석을 인용해, 위조 또는 도용된 국기를 게양한 러시아 그림자 선단 소속 선박 23척이 영국 해협과 발트해에서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선박 상당수는 러시아산 원유 수출과 연계된 것으로 파악되며, 이로 인해 유럽의 안보와 핵심 인프라, 환경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들 "유령 선박" 대다수는 노후한 데다 관리 상태도 부실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구축한 1,400척 이상 규모의 방대한 그림자 선단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국제 제재를 피해 원유를 밀반출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을 조달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1월 25일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 소속으로 의심되는 유조선 '그린치(Grinch)'가 프랑스 마르세유 포스항 인근 마르티그 해안에서 포착됐다. [티보 모리츠/AFP]
1월 25일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 소속으로 의심되는 유조선 '그린치(Grinch)'가 프랑스 마르세유 포스항 인근 마르티그 해안에서 포착됐다. [티보 모리츠/AFP]

올해 1월 미국 당국이 나포한 '벨라 1(Bella 1)'호가 이후 'MV 마리네라(MV Marinera)'로 선명을 변경한 사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현행 해상법과 단속 역량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국의 지원을 받은 미군은 대서양에서 수주에 걸친 추적 끝에 국제 제재망을 회피해 온 러시아 국적의 원유 운반선을 나포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해양 안보 전문가 호세 M. 마시아스 3세는 "마리네라 나포는 해상 차단 작전이 독재정권과 그 대리 세력의 자금 네트워크를 차단하는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질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그림자 선단은 제재를 회피하고자 운항 중에 선명과 선적, 소유주를 변경하는 등 다양한 위장 수법을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모스크바에 자금을 대기 위해 불법 원유 거래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티아(선명을 타비안으로 변경)'와 '아리아(바베이도스 국적으로 선적 변경)'가 있다.

이들 선박의 운항은 데이터 케이블과 가스관 등 해저 기반시설에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 1월 유럽정책센터(EPC) 선임연구원 크리스 크레미다스-코트니는 "러시아와 연계된 선박들이 드론 침투, 케이블 훼손, 핵심 인프라 정찰 등에 연루된 의혹을 받아 왔다"고 지적했다.

검증대에 오른 유럽의 대응 의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무해통항권을 보장하고 있어 위장 국기 게양 등 명백한 범죄 혐의에 대한 증거가 없는 한 선박의 통항을 막는 데는 법적 한계가 따른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EU)의 제재 명단이 제각각인 탓에 1,400척의 선박 가운데 단 195척만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단속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과 규모는 법적 허점을 보완하고 단속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유럽 차원의 광범위한 공조와 법·제도 정비를 요구하고 있다.

2025년 6월 북유럽 14개국이 한자리에 모여 러시아 그림자 선단 대응 공조 강화 방안을 논의한 사례는 다자 협력의 필요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덴마크 외교부에 따르면 참가국들은 국제법에 기반해 책임 있는 해상 활동과 규범 준수, 운항 투명성을 촉진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데 뜻을 모았다.

나토(NATO)의 제재 조치와 더불어 이 같은 노력은 2022년 이후 러시아의 원유 수출을 76% 감소시키는 효과를 냈으며, 모스크바의 전쟁 자금 조달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유럽으로서는 이번 사안이 대응 의지를 가늠할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해양법을 강화하고 단속 역량을 증강하며 제재 명단을 통합하는 것은 러시아 그림자 선단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적 단계다.

세계 무역의 핵심 항로인 영국 해협이 악의적인 적대 세력이 자유롭게 활개치는 활동 무대로 전락하는 것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영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자국 영해와 기반시설, 공동 안보를 지키기 위해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그림자 선단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싸움의 범위가 전장을 넘어 확장되고 있음을 분명히 각인시킨다. 이 싸움은 해양 통제권과 유럽의 향후 안보 안정성을 둘러싼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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