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이슈
에너지 충격, 공급 안보의 지형을 다시 그리다
러시아의 전쟁은 모스크바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를 약화시켰다. 이제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글로벌 시장이 더 광범위한 공급망 차질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유연성을 갖추고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
![2026년 6월 1일 이란 ISNA 통신이 제공한 사진에는 이란 시민들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 반다르아바스의 수루 해변에 앉아 있다. [아미르호세인 호르고에이/ISNA/AFP]](/gc7/images/2026/06/13/56465-afp__20260601__b4m49nb__v4__highres__topshotiranusisraelwardailylife__1_-370_237.webp)
글로벌 워치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충격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에 대한 유럽의 직접적인 의존도는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걸프만 지역의 수출 차질, 해상 운송로의 제약, 그리고 재고 압박이 다시 높아지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 전반이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취약한 에너지 상호의존성” 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더 이상 특정 공급국이 에너지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핵심은 수입국들이 복합적인 위기에 동시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급 경로와 비축량, 그리고 정책적 공조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유럽, 압박을 견뎌내다
유럽은 2022년 자신을 취약하게 만들었던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 노출을 줄였다.
![2026년 5월 25일 잠무 카슈미르 스리나가르의 한 힌두스탄 석유 주유소에서 직원이 새로 인상된 연료 가격 표시판 옆에 서 있다. [피르도우스 나지르/누르포토/AFP]](/gc7/images/2026/06/13/56466-afp__20260525__nazir-notitle260525_npvb0__v1__highres__indianretailersraisefuelprice-370_237.webp)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자립 정책인 '리파워EU(REPowerEU)' 추진으로 러시아산 가스 수입 비중은 2021년 45%에서 2025년 12%로 감소했다. 원유 수입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20%에서 2025년 약 2%로 낮아졌으며, 러시아산 석탄은 EU 에너지 공급망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유럽을 에너지 충격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에너지 충격의 정치적 직접성은 약화됐지만, 수입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이 여전히 에너지 불안정의 원천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주장을 더욱 뒷받침했다.
모스크바는 유가 폭등에 따른 반사이익을 여전히 누릴 수 있고, 원유 수출 물량을 아시아 시장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단일 파이프라인 공급 관계를 통해 유럽을 압박할 수 있는 능력은 훨씬 약해졌다.
호르무즈 해협의 공급 차질은 유럽에 또 다른 시험대를 제시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5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지난 2월 이후 발생한 전 세계 원유 공급 손실량이 하루 평균 1,280만 배럴에 달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영향을 받은 걸프만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량은 중동 분쟁 발발 이전 대비 하루 평균 1,440만 배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IEA는 걸프만의 누적 원유 공급 손실량이 이미 10억 배럴을 돌파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손실 규모는 시장의 적응 양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서양 연안 국가들의 원유 수출량이 증가했고, 전략비축유와 상업 재고가 방출됐으며, 정유사들은 정제공장 가동률을 조정했다.
IEA는 미주 대륙의 원유 공급 성장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원유 구매자들이 중동산 원유를 대체할 공급원을 찾으면서 미국, 브라질, 캐나다, 카자흐스탄,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 역시 증가했다.
유럽은 현재까지 항공유 부족 사태를 면하고 있다.
아포스톨로스 치치코스타스 EU 교통담당 집행위원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산과 나이지리아산 공급 물량이 결손분 일부를 메우고 있어 향후 수개월간 공급 부족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동발 원유 공급 차질이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상황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차이는 중요한 안보적 의미를 지닌다.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유럽에 시간을 벌어준 것은 사실이나, 가격 폭등 위험까지 제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병목 지대가 드러낸 한계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남아있다.
로이터 통신은 6월 5일 오만 정부가 미나 알 파할 항구의 하역 작전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 후 유가가 다소 진정세를 보이며 브렌트유가 배럴당 95달러 선에서 거래됐다고 보도했다.
같은 보도에서 전 세계 원유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통행이 미·이란 평화 협상 교착으로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시장은 최악의 공급 결손 수치가 시사하는 것보다는 비교적 차분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나,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코메르츠방크 분석가들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원유 재고와 우회 수출 경로, 전반적인 수요 둔화 등이 브렌트유의 추가 상승 폭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IG의 시장 분석가 토니 시커모어는 향후 시장 전망이 "호재와 악재성 보도가 복잡하게 얽혀" 불확실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와 이란의 사례는 원유 공급 차질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산 원유는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계속 유통되고 있으나, 러시아는 보다 제한된 구매처에 의존하며, 할인된 가격을 통한 물량 판매에 더욱 크게 의존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해운 물류 데이터와 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지난 5월 이란의 원유 및 초경질유 수출량이 하루 30만 배럴 미만으로 떨어지며 최소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에너지 정보업체 볼텍사의 클레어 정먼 분석가는 이란의 수출 감소 원인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공급망 차질, 미 해군의 해상 봉쇄, 그리고 무력 충돌 위험을 회피하려는 선주·보험사·거래 상대방들의 소극적 태도를 지목했다.
미국이 이러한 글로벌 공급 결손의 일부를 메우고 있으나, 이 역시 미국 에너지 인프라 전반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6월 5일자 보도에서 지난 5월 미국의 원유 수출량이 하루 평균 560만 배럴에 달했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오클라호마주 쿠싱의 원유 재고량은 5월 29일 기준 2,240만 배럴로 감소했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인 에너지 애스펙츠의 제레미 어윈 수석 분석가는 쿠싱의 원유 재고량이 2,000만 배럴 밑으로 떨어지면 운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것이 이번 에너지 위기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유연한 산유국, 긴급 비축유, 그리고 우회 무역로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으나, 안정적인 해상 수송로를 영구적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제한이 길어질수록 그 부담은 외교·물류의 영역을 넘어 유가 상승, 수요 감축, 경제 성장 둔화로 전이된다.
에너지 안보는 이제 평시에 저렴한 공급원 접근성보다는 정상적인 수송로가 마비됐을 때 에너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으로 평가된다.
유럽은 러시아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학습했으며, 이제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이 동일한 방식으로 글로벌 시장 전반을 시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