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이슈

호르무즈 사태 이후의 에너지 안보

천연가스가 청정에너지 전환에 포함되는지를 두고 외교 무대에서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는 고질적인 세계 화석연료 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026일 3월 15일 호르무즈 해협 일대 선박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 지도. [조나단 라/누르포토/AFP]
2026일 3월 15일 호르무즈 해협 일대 선박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 지도. [조나단 라/누르포토/AFP]

글로벌 워치 |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 기후·에너지 외교 현장에서 청정에너지 전환의 범위를 보다 폭넓게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국가들에 속한다.

이 같은 논의에서 천연가스는 단순한 퇴출 대상의 화석연료가 아니라, 배출량이 낮은 에너지이자 '전환' 연료로 보는 시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 논쟁은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이후 채택된 합의문을 계기로 더욱 부각됐다. 해당 합의문은 에너지 시스템에서 화석연료 탈피를 촉구하면서도, '전환 연료'가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 같은 방안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현실적 제약 요건들을 반영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6년 3월 13일 네팔 카트만두의 가스 공급소에 주민들이 평소보다 서둘러 가스통을 구매하거나 충전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다. [암비르 톨랑/누르포토/AFP]
2026년 3월 13일 네팔 카트만두의 가스 공급소에 주민들이 평소보다 서둘러 가스통을 구매하거나 충전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다. [암비르 톨랑/누르포토/AFP]

가스 발전은 수요에 맞춰 발전량을 조절할 수 있고, 이미 많은 국가들이 가스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일부 정책 담당자들은 전력망과 저장 설비, 송전 용량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가스 발전이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재정의

일각에서는 청정에너지의 정의를 지나치게 확대할 경우, 실제 배출량이 낮은 에너지와 결국 또다시 이어질 장기 지속형 화석연료 투자 간의 경계가 사실상 모호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3년 세계 에너지 전망( World Energy Outlook)은 탄소 포집 기술이 적용된 일부 화석연료가 청정에너지 시스템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관건은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저장 설비, 에너지 효율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데 있다고 경고했다.

IEA는 청정에너지 투자가 2020년 이후 40% 증가했으며, 이는 단순히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목표뿐 아니라 특히 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에너지 안보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고 밝혔다.

동시에 IEA는 현재의 석유·가스 투자 규모가 탄소중립(넷제로) 달성 경로에 부합하는 수준을 여전히 웃돌고 있다고 경고했다.

에너지 관련 학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 제기돼 왔다.

마이클 브래드쇼 워릭경영대학원 글로벌 에너지 교수는 채텀하우스(Chatham House) 행사에서 해법은 화석연료 투자를 늘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과 저탄소 발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채텀 하우스 연구진은 2026년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수입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 자체가 "에너지 불안정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 재생에너지는 가격 변동성을 줄이고 공급 충격을 완화하며 지정학적 위험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분석가들은 또한 글로벌 에너지 병목 지점의 전략적 취약성을 지적하며,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석유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시적인 통과 차질만 발생해도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재편되고, 유럽과 아시아 전반의 지정학적 긴장이 한층 고조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스트레스 테스트

앞서 제기된 이러한 논지는 현재 페르시아만 상황을 통해 그 타당성이 확인되고 있다.

로이터는 3월 11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이 미국·이스라엘·이란이 연루된 이번 전쟁으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5분의 1일 통상적으로 이 해협을 통해 운송되고 있다.

로이터는 3월 16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은행이 유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스탠다드차타드는 주요 걸프 산유국 전반에서 하루 740만~820만 배럴 규모의 공급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추산했다.

이 같은 공급 차질은 석유와 가스 인프라가 에너지 안보를 보장한다는 화석연료 확장론의 핵심 논거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비상 비축유를 방출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이 "장기적인 시장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이먼 스티엘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장은 이번 전쟁을 "화석연료 의존이 초래한 참혹한 교훈"이라고 규정하며, 이에 대응해 기후 정책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는 '완전한 망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3월 10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재생에너지는 이제 "에너지 안보와 경제 안보, 국가 안보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이라며, 그 이유는 "햇빛에는 가격 급등이 없고 바람에는 금수 조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IEA는 탄소 포집 기술이 적용된 화석연료를 포함해 배출량이 낮은 유연한 에너지 수단들이 안정적인 전환 과정에서 여전히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분쟁 위험이 높은 지역에 집중된 연료를 중심으로 구축된 에너지 시스템은 지속적인 지정학적 위험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다는 것이다.

천연가스를 청정에너지로 분류하는 국가가 늘어날수록, 그 선택이 기후금융과 인프라 고착화, 그리고 탈탄소화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진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