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사안

핀란드 핵무기 금지 해제 추진, 유럽 향한 러시아 위협 부각

핀란드 정부가 북극 전략 요충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반핵 입장을 철회한 것은 핀란드 핵 정책의 급선회로, 러시아의 실질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여실히 드러낸다.

2024년 3월 벨기에 브뤼셀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어네지 정상회의에서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켄조 트리부야르/AFP]
2024년 3월 벨기에 브뤼셀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어네지 정상회의에서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켄조 트리부야르/AFP]

글로벌 워치 |

헬싱키가 수십 년간 유지해 온 핵무기 금지 정책의 급선회는 심화되는 모스크바의 위협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같은 핀란드의 정책 전환은 과거 중립 노선을 유지해 온 국가들까지 그동안 공개적으로 거의 논의되지 않던 억지력 방안을 모색하게 만들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방어 목적의 핵무기 반입·운송·소지를 금지해 온 오랜 규제를 해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같은 조치는 핀란드의 나토 가입과 러시아와의 긴장 고조에 따른 정책 전환으로 평가된다.

1987년 핵에너지법(Nuclear Energy Act)에 따라 시행된 이 규정은 냉전 시기 핀란드가 유지해 온 중립 노선과 핵확산 방지 원칙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안보 체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무너졌고, 이는 이듬해인 2023년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재촉한 데 이어 이제는 핵 정잭 재검토에 나서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3년 8월 현재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 이스칸데르-M(Iskander-M) 미사일 발사대. [러시아 국방부/위키미디어]
2023년 8월 현재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 이스칸데르-M(Iskander-M) 미사일 발사대. [러시아 국방부/위키미디어]

2026년 3월 초 조용히 추진된 이번 입법 조치는 국가 방위를 위한 경우에 한해 핀란드 영토 내 핵무기 반입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나토 동맹 전략에 부합하면서도 핵무기의 상시 배치는 배제하려는 방안으로 평가된다.

주요 언론 매체들이 정책 변화에 주목하고 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세부 사항을 살펴보면 이러한 정책 전환이 러시아의 특정 군사 태세에 대응해 추진된 것임을 보여준다.

러시아와 1천300km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는 콜라 반도 내 핵 탑재 가능 전력을 포함한 모스크바의 북극권 군사력 증강으로 안보 취약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Iskander) 미사일을 국경 인근에 배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미사일 배치의 근접성은 통상적 억지력만으로는 하이브리드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러시아 위협이 촉발한 핀란드의 정책 전환

모스크바의 강경 발언은 핀란드의 정책 전환을 촉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핵무기 배치가 러시아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천명했다.

이 같은 크렘린의 강경한 태도는 2022년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발트해 지역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고 위협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등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과거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위협적 태도는 전체적인 담론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법률이 동맹 간의 효율적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는 인식을 핀란드 지도부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결론은 지역 전반에 걸친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러시아의 압박 전술에 대한 보도는 핀란드 정책 담당자들이 억지력, 민간 대베 태세, 동맹 간 상호운용성을 더 이상 별개의 정책 영역이 아닌 상호 보완적 요소로 인식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련 학계 분석가들은 이를 러시아의 '긴장 고조를 통한 긴장 완화', 즉 핵 위협을 통해 외부의 개입을 억제하려는 군사 전략에 대한 현실적 대응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허위정보를 연구하는 스웨덴 전문가 파트리크 옥사넨은 2025년 보고서에서 모스크바는 핀란드를 '나치 협력국'으로 규정하는 등 오랫동안 흑색선전을 이어왔으며, 이러한 움직임이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옥사넨은 "러시아가 역사를 마치 전장에서 무기를 휘두르듯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핀란드의 대응 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선전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헬싱키 현대사를 집필한 정치학자 헨리크 메이난데르는 이러한 전술을 "기괴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스탈린식 역사 수정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결을 바탕으로 자리 잡은 핀란드의 기존 반핵 노선은 핵군축을 최우선으로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참여 중단과 핵 위협 발언 등으로 글로벌 안보 위협 수위가 높아지면서 이 같은 정책 기조의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안티 하카넨 핀란드 국방장관은 이번 정책 변화가 "나토 동맹의 일원으로서 핀란드의 군사 방위를 가능하게 하고, 나토의 억지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러한 인식은 전문가들이 이번 핀란드의 정책 전환을 핵탄두 수가 수천 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의 비전략 핵전력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평가하는 견해와도 맞닿아 있다.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나토

조건 없는 나토 가입은 핵 공유를 포함한 집단적 억지 체제를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시 핵무기 배치를 금지하는 노르웨이·덴마크와 달리, 핀란드의 이번 제안은 핵전력의 영토 통과나 비상시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언론 보도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중요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 같은 조치는 해저 케이블과 파이프라인의 파괴 공작 위험에 노출돼 있는 북극권 내 동맹의 전략적 필요성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싱크탱크 분석가들은 이번 사안이 가져올 보다 광범위한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핀란드국제문제연구소(FIIA)는 러시아의 북극권 군사화가 핵 군축 진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FIIA는 "안보 환경의 변화가 그동안 이룬 진전을 중단시키거나 후퇴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러시아의 극초음속 무기와 핵전력 현대화를 위한 투자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글로벌 안보 위험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핀란드의 핵 정책 전환은 과거 평화주의 노선을 고수해 온 국가들이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은 과도한 위협 인식을 경계하면서도 이번 정책의 방어적 성격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군사 교리와 실제 행동 사이의 차이를 경고하고 있다.

신중함과 단호함이 결합된 이러한 핀란드의 정책 변화는 그동안 주요 언론 보도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지만 유럽 안보 질서를 재편하고, 끈질긴 적대 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나토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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