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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의장·프랑스 대통령 “중동 전쟁, 유럽 에너지 취약성 드러내”
유럽 지도자들은 원자력을 다시 에너지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은 중동 전쟁이 수입 화석 연료 의존의 위험성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그린피스 활동가가 3월 10일 파리 외곽 불로뉴비양쿠르의 공연장 ‘라 센 뮤지칼(La Seine Musicale)’에서 열린 원자력 에너지 정상회의에서 ‘원자력이 러시아의 전쟁에 연료를 공급한다(Nuclear power fuels Russia’s war)’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압둘 사부르/POOL/AFP]](/gc7/images/2026/03/17/54998-afp__20260310__a2nr8y2__v1__highres__franceenergynuclear-370_237.webp)
AFP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월 10일 중동 전쟁이 유럽의 에너지 취약성을 드러냈다며 유럽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민간 원자력 발전 활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두 지도자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2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열린 원자력 에너지 정상회의에서 발언했다. 정상회의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의 시위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폰데어라이엔 의장은 유럽이 민간 원자력 발전을 멀리한 결과 화석 연료 의존에 대한 대륙의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파리 외곽에서 열린 제2차 원자력 에너지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신뢰할 수 있고 저렴한 저탄소 전력원을 외면한 것은 유럽의 전략적 실수였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월 10일 파리 외곽 불로뉴비양쿠르의 공연장 ‘라 센 뮤지칼(La Seine Musicale)’에서 열린 원자력 에너지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압둘 사부르/POOL/AFP]](/gc7/images/2026/03/17/54997-afp__20260310__a2n84bj__v3__highres__franceenergynuclear-370_237.webp)
이어 "화석 연료의 경우 우리는 가격이 비싸고 변동성이 큰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유럽은 다른 지역에 비해 구조적인 열세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의 중동 위기는 이러한 에너지 의존이 얼마나 큰 취약성을 초래하는지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폰데어라이엔 의장은 "우리에겐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라는 자체적인 저탄소 에너지원이 있다"며, "이를 올바르게 활용한다면 이들은 에너지 자립과 공급 안정성, 그리고 경쟁력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주권의 확립
마크롱 대통령은 민간 원자력 발전이 에너지 주권 확보에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원자력 발전은 에너지 자립, 즉 에너지 주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탈탄소를 통한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화석 연료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에너지는 압박의 수단, 나아가 체제 불안정을 초래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폰데어라이엔 의장은 "1990년 당시 유럽 전력의 3분의 1이 원자력에서 생산됐지만 현재는 그 비중이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에너지의 부활이 나타나고 있으며 유럽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하길 원한다"고 언급했다.
폰데어라이엔 의장은 소형 모듈 원자로(SMR) 신규 전략을 공개하며 "혁신적인 원자력 기술 투자를 지원하려고 2억 유로(약 3,430억 원) 규모의 보증 기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새로운 기술이 2030년대 초반까지 유럽 내에서 실제로 가동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형 모듈 원자로(SMR)는 발전 용량이 유닛당 최대 300메가와트(MW)에 이르는 차세대 원자로로 기존 대형 원전 발전 용량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SMR은 구조가 비교적 단순해 건설이 용이하며 대형 원자로보다 비용 부담도 낮다.
전쟁의 연료가 된 원자력
원자력 에너지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위기에 직면했으며 이 사고는 1986년 체르노빌 참사가 남긴 공포를 다시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에너지 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지구 온난화에 대응할 청정에너지 수요가 커지면서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다.
다만 화석 연료의 대안으로 원자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두고는 여전히 논란이 적지 않다. 많은 환경 단체들은 원전의 안전 위험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 등을 이유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정상회의 개막은 그린피스 활동가 두 명이 무대에 올라 시위를 벌이면서 잠시 중단됐다.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자들을 맞이하던 중 이들은 무대에 난입해 “원자력이 러시아의 전쟁에 연료를 공급한다(Nuclear power fuels Russia’s war)”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쳤다.
이들 활동가가 보안 요원들에 의해 모두 끌려 나가기 직전, 한 명이 "왜 우리는 여전히 러시아산 우라늄을 구매하고 있는가?"라고 외쳤다.
그린피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5년째 이어지고 있음에도 프랑스가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Rosatom)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8년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로사톰의 자회사 테넥스(Tenex)와 수백만 유로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 따라 프랑스 원전에서 나온 재처리 우라늄은 러시아로 보내져 변환 및 재농축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전력 생산에 사용된다.
그린피스는 약 15명의 활동가가 행사장으로 향하던 각국 정부 관계자들의 도착을 방해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성명을 통해 "이번 원자력 에너지 정상회의는 지정학적 긴장과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현재의 정세는 물론, 기후 변화 대응 측면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