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이슈

진실은 어떻게 조작되는가: 냉전이 남긴 러시아의 유산

소련 붕괴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의 마음과 정신을 얻기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지 디지털 방식으로 위장한 상태로 현재 진행형일 뿐이다.

푸틴 대통령의 얼굴과 소련 문장이 새겨진 티셔츠들이 2025년 5월 15일 모스크바의 한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다. [Alexander Nemenov / AFP]
푸틴 대통령의 얼굴과 소련 문장이 새겨진 티셔츠들이 2025년 5월 15일 모스크바의 한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다. [Alexander Nemenov / AFP]

올하 체필(Olha Chepil) 기자 |

키이우(Kyiv)발 — 위성이나 핵 대치 이전에, 소련은 무기 없이 싸우는 전쟁의 기술을 마스터했다. 1945년부터 붕괴되기까지, 소련은 자국의 이념을 퍼뜨리고, 경쟁국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동맹을 분열시키고, 현실을 재구성하기 위해 선전과 허위정보를 활용했다.

이러한 전술은 소련 국기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러시아의 국가 전략에 흡수되어, 익숙한 도구들로 새로운 야망을 실현하는 데 재활용되었다.

“이건 소련 시절은 물론, 러시아에도 대대로 사용하던 정책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립 제2차 세계대전 역사박물관의 드미트리 가이넷디노프(Dmitry Gainetdinov) 부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분열시키고 지배하라, 단합을 약화시켜라... 포퓰리스트 정권이 들어서게 만들고, 기존의 서사를 흔들어라. 이 모든 전략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는 글로벌 와치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 남성이 1991년 8월 28일 모스크바에서 프라우다(Pravda) 신문을 들고 신문사 건물 앞에 서 있다. [Gerard Fouet / AFP]
한 남성이 1991년 8월 28일 모스크바에서 프라우다(Pravda) 신문을 들고 신문사 건물 앞에 서 있다. [Gerard Fouet / AFP]
러시아 국영통신사 타스(TASS)의 본사 건물이 2015년 1월 23일 모스크바에서 촬영되었다. [Dmitry Serebryakov / AFP]
러시아 국영통신사 타스(TASS)의 본사 건물이 2015년 1월 23일 모스크바에서 촬영되었다. [Dmitry Serebryakov / AFP]

이 전략은 냉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수십 년 전 블라디미르 레닌 시절에 이미 시작되었다. 레닌은 ‘정보에 대한 통제는 영토에 대한 통제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후 소련의 영향력 작전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마음을 조작하는 전쟁’으로 발전했으며, 국가 라디오 방송부터 위조 문서까지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오늘날, 이러한 수법은 소셜미디어 피드와 댓글창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여전히 정치적이며, 매체는 디지털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조작하고, 호도하며, 불안정하게 만드는 사명은 지금도 그대로다.

허위정보가 일상이 되다

냉전 기간 동안 KGB는 소련의 허위정보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 안에 ‘서비스 A(Service A)’라는 부서가 있었는데, 이 부서는 선전 전쟁에 특화되어 있었다. 설득이 목적이 아니라 불안정화가 목적이었다.

“이 선전 기계가 집중된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역사학자이자 정치분석가인 파블로 하이-니즈니크(Pavlo Hai-Nyzhnyk)가 글로벌 와치에 말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통제했고, 메시지를 정교하게 다듬기 위한 틀을 제공했습니다.”

소련의 선전망은 타스(TASS), 라디오 모스크바(Radio Moscow) 같은 공식 매체뿐 아니라, 가짜 과학 출판물, 문화센터, 그리고 소위 우호협회를 통해 운영되었다. 목표는 소련의 서사를 서방 담론에 주입하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데 있었다.

“모든 나라에 양자 우호협회가 있어 소련 이데올로기를 퍼뜨렸습니다. 지금 러시아는 러시아 하우스(Russian Houses)와 유사 기관을 통해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넷디노프는 말했다.

속임수를 전략으로 삼다

“모스크바의 노보스티(Новости) 본사에는 허위정보 프로그램에 전념하는 KGB 요원 50명이 배치된 부서가 있었다”고 역사가 칼더 월튼(Calder Walton)은 2022년 《텍사스 국가안보리뷰(Texas National Security Review)》에 썼다. 그는 이 내용을 1985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William Casey)가 댈러스 세계문제위원회에 한 연설을 인용해 전했다.

KGB의 가장 악명 높은 시도 중 하나는 CIA가 에이즈(AIDS)를 만들었다는 허위 주장이다. 이 이야기는 처음 인도 신문에 등장한 뒤 소련과 서방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 분석가들은 이 목적이 과학과 미국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데 있었다고 말한다.

“KGB는 이것이 CIA의 비밀작전이며 생물무기라는 주장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회발전센터 정치·법률 프로그램 책임자 이호르 레이터로비치(Ihor Reiterovych)가 글로벌 와치에 말했다.

제3세계, 제3전선으로

소련은 나토(NATO)에 집중하는 한편, 개발도상국을 선전과 비밀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라디오 모스크바는 수십 개 언어로 방송하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운동을 지원했고, 소련을 억압받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동맹’으로 묘사했다.

“소련은 선전에서 가장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무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이 우리를 정복하려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이-니즈니크(Hai-Nyzhnyk)가 말했다.

반식민지 구호 이면에서, 러시아는 영향력 아래 있는 운동과 정권에 무기, 군사 교관, 이념 교육을 제공했다.

“과거에는 소련 군인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바그너(Wagner)가 있습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실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아프리카에서 러시아를 위해 싸운 용병 부대를 가리켜 하이-니즈니크가 말했다.

요원들의 네트워크

러시아의 선전 핵심은 냉전 시절과 변하지 않았으며, 바뀐 것은 규모와 표현 방식뿐이라고 레이터로비치는 말했다.

“냉전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라디오가 아니라 여론 주도층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독립적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러시아의 입장을 반복하는 역할을 했죠,” 그가 설명했다.

오늘날에도 그런 인물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다른 명칭으로 불린다. 독일에서는 이들을 종종 푸틴페어슈테러(Putinversteher), 즉 ‘푸틴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라 부른다고 레이터로비치는 지적했다.

러시아는 연구자, 활동가, 인플루언서 등 이런 인물들을 활용해 독립적 사고를 가장하면서 국가 승인 서사를 퍼뜨린다.

“그런 인물을 통해 서사를 홍보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레이터로비치가 말했다.

새로운 도구, 변하지 않은 목표

오늘날의 도구는 틱톡(TikTok), 텔레그램(Telegram), 트롤 농장(troll farms) 등 새로울 수 있지만, 크렘린의 목표는 여전히 같다. 분석가들은 의심을 심고, 혼란을 퍼뜨리며, 신뢰를 약화시키는 것 이라고 말한다.

“목표는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흘리고, 스캔들을 조장하며, 상대방에게 증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라고 레이터로비치는 말했다.

디지털 과부하의 시대에 그 결과는 혼란이다.

“그들은 너무 많은 어리석은 생각들을 퍼뜨려 대중이 그 늪에 빠져 허우적대게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노력들은 소련 시대 교리에 뿌리를 둔 전략을 따른다. 한때 허위정보 전문가를 양성하던 대학들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오늘날 캠페인을 이끄는 많은 이들이 소련 시절 교육을 받았다.

“변한 것은 규모뿐입니다.”라고 레이터로비치는 말했다.

역사학자들은 전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진화했다고 말한다.

한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허위정보는 마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목적은 의지와 이해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분석가들은 냉전 시절의 교훈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해법으로는 투명성, 교육, 그리고 탄탄한 민주주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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