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캄보디아, 해양 분쟁 유엔 조정 절차에 회부
태국만의 중첩 수역을 둘러싼 영유권·해양 관할권 분쟁은, 단 한 척의 함정도 발포하지 않은 채 해양법, 에너지, 안보, 민족주의 정치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026년 5월 8일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제48차 아세안(ASEAN)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론 파빌라/풀/AFP]](/gc7/images/2026/07/27/56817-afp__20260508__b28p9t9__v1__highres__philippinesaseandiplomacy-370_237.webp)
글로벌 워치 |
캄보디아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른 강제 조정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하면서, 태국과 수십 년간 이어진 해양 분쟁은 공식적인 국제 절차로 넘어가게 됐다. 이는 해양 분쟁이 법과 자원, 역내 안정이 맞물린 시험대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이번 결정은 방콕이 태국만의 중첩 수역을 둘러싼 양국 협의를 오랫동안 규정해 온 기본 틀이었던 2001년 양해각서(MOU)를 파기한 뒤 나온 조치다.
태국 내각은 20년 넘게 협상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자 2026년 5월 5일 해당 양해각서(MOU)를 폐기했다. 캄보디아는 이에 맞서 6월 2일 강제 조정 절차를 개시하고, 태국과 유엔 사무총장에게 이 같은 조치를 공식 통보했다.
태국은 이후 조정 절차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법적 구속력을 지닌 판정이 아닌, 강제력 없는 권고에 그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2026년 5월 8일 세부에서 열린 아세안(ASEAN) 정상회의 개막식에 맞춰 육교 위에서 열린 집회에서 환경운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테드 알지베/AFP]](/gc7/images/2026/07/27/56818-afp__20260508__b28p69e__v1__highres__philippinesaseandiplomacy-370_237.webp)
교착 상태에서 조정 절차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른 강제 조정 절차는 중재나 재판이 아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단이 분쟁을 검토하고 양측의 주장을 청취한 뒤 권고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권고안은 자동적으로 법적 구속력을 수반하지 않지만, 절차는 공식 기록을 남기고 독립적인 분석을 제공하며, 비타협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데 따르는 외교적 비용을 증대시킨다. 이 절차가 앞서 활용된 유일한 사례인 동티모르-호주 해양 분쟁은 2018년 해양경계 조약 체결로 이어졌다. 이는 양측이 해결 의지를 갖고 성실히 참여할 경우, 국제사회의 체계적 개입과 조율이 장기간 이어진 교착 상태를 돌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안의 이해관계는 단순한 법적 절차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분쟁 수역은 약 2만6000㎢에 달하며, 약 3000억달러 규모의 자원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자원은 주로 천연가스와 이에 관련되는 원유로 구성돼 있다. 광범위한 에너지 충격이 이어지는 시점에, 수입국들은 여러 위기를 동시에 대응하려면 공급 경로와 비축 물량, 정치적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캄보디아 입장에서는, 이 해역에 매장된 자원을 개발할 경우 상당한 수입을 확보하고 산업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태국에는 이 지역이 에너지 개발 구상과 오랜 영유권 문제가 맞물린 해역이다. 명확한 규율 체계가 확립되지 않는 한, 대형 에너지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 투입에 나설 가능성은 사실상 낮다.
에너지와 민족주의 압박
국내 정치 상황은 사태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태국 정부의 양해각서(MOU) 폐기 결정은 민족주의 정서에 민감한 정부 아래에서 이뤄졌다. 이 같은 정서는 특히 2025년 캄보디아와의 국경 충돌 이후 고조됐다. 태국 정부는 오랫동안 양국 간 직접 협상을 선호해 왔으며, 자국보다 규모가 작은 이웃국가와의 분쟁을 국제 무대로 끌고 가는 데 거부감을 보여왔다.
수년간 이어진 교착 상태에 불만을 품어온 캄보디아는 유엔 절차를 막힌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자국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양국 정부는 이제 국내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분쟁을 관래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이 절차에는 기회와 위험이 공존한다. 양측이 성실하게 임한다면 핵심 입장을 양보하지 않은 채 공동 개발과 수익 배분, 단계적 탐사 등 실질적 합의로 이어질 수 있는 권고안이 도출될 수 있다. 티모르해 사례에서 확인된 선례는 외부의 중재와 조율이 법적 명확성을 실행 가능한 타협안으로 연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느 한쪽 정부라도 이번 절차에 참여하는 것을 제로섬 대결로 규정하거나 이를 국내 지지층 결집에 활용할 경우, 바로 그 절차가 오히려 대립을 고착시킬 수 있다.
양국의 민족주의 담론은 과거에도 기술적 경계 문제를 주권과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시험대로 몰아간 바 있다. 에너지 기업들은 투자에 앞서 안정적인 규칙 체계를 요구하고, 정부는 타협안을 제시하기 전에 정치적 여지를 확보해야 한다.
동남아시아의 관점에서 이번 사례는 국제법적 분쟁 해결 장치가 지닌 가치와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 조용한 합의를 선호해 온 아세안(ASEAN)의 방식은 갈등 확산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지만, 난해한 분쟁을 수년째 해결하지 못한 채 방치하기도 했다. 이번 분쟁을 유엔의 체계적인 절차에 회부하면 모호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상호 신뢰나 정치적 해결 의지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핵심 쟁점은 캄보디아와 태국이 국내 정치가 이 절차를 또 하나의 경쟁과 대결의 장으로 바꿔 놓기 전에, 이 제도를 활용해 투자와 협력이 가능해질 만큼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태국만의 수면은 여전히 잔잔하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불신이 해법의 문을 닫아버리기 전에 법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가늠할 시험대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