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사안

러시아 핵 기밀 온라인 유출…국가 안보에 치명타

러시아 핵 시설과 관련된 정보가 사상 최대 규모로 유출되며, 전략 기지의 설계도까지 드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핵무기를 앞세워 세계를 위협해 온 러시아 정부로서는 국제적 망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월 27일 무르만스크에서 핵잠수함 ‘아르한겔스크(Arkhangelsk)’를 시찰했다. (사진: Sergei Karpukhin/Sputnik/Pool/AFP)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월 27일 무르만스크에서 핵잠수함 ‘아르한겔스크(Arkhangelsk)’를 시찰했다. (사진: Sergei Karpukhin/Sputnik/Pool/AFP)

갈리나 코롤(Galina Korol) 기자 |

키이우 -- 모스크바가 핵미사일을 과시하며 핵 위협을 강화하는 가운데, 러시아 군사력의 실체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것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아는 사람에게는 명백한 사실이다.

덴마크의 탐사보도 매체 댄워치(Danwatch)와 독일의 데어 슈피겔(Der Spiegel ) 기자들은 노트북과 끈기를 무기로, 공개된 자료와 벨라루스부터 카자흐스탄까지 연결된 서버망을 통해 러시아의 극비 군사 시설 관련 문서 200만 건 이상을 발견했다. 이 과정에는 내부자나 스파이가 개입하지 않았다.

댄워치 기자들은 5월 28일 “러시아 당국이 데이터베이스 접근을 점차 제한했으나 우리는 이를 우회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숨기려 했던 핵심 비밀들은 잠긴 금고가 아니라, 공개된 데이터베이스에 숨겨져 있었다.

1992년 4월 2일, 모스크바주 돌고프루드니의 지하 벙커에서 러시아 전략 핵전력 장교들이 미사일 궤도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 Gerdo/AFP)
1992년 4월 2일, 모스크바주 돌고프루드니의 지하 벙커에서 러시아 전략 핵전력 장교들이 미사일 궤도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 Gerdo/AFP)
1992년 3월 20일, 시베리아 치타 인근 드로브야나야에서 한 러시아 전략 핵전력 장교가 미사일 발사관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Gerdo/AFP)
1992년 3월 20일, 시베리아 치타 인근 드로브야나야에서 한 러시아 전략 핵전력 장교가 미사일 발사관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Gerdo/AFP)

'궁극의 첩보'

기자들이 입수한 자료 중에는 2024년 여름 입찰 공고에 첨부된 전략 핵시설 설계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러시아는 입찰 사이트를 폐쇄하고 규정을 강화했지만, 민감한 군사 정보가 여전히 공개된 소스에서 발견되고 있다.

오랫동안 정보를 통제해 온 러시아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서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이런 자료는 궁극의 첩보라 할 수 있다,” 영국군 1군사정보대대 전 대대장 필립 잉그램(Philip Ingram)이 댄워치에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보 유출이 단순한 기술 결함을 넘어, 러시아가 모든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국가의 이미지를 정면으로 훼손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가 아무리 사이버 보안의 강력함을 자랑해도, 이번 사건은 그 허점이 명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안보협력센터의 드미트로 즈마일로(Dmytro Zhmaylo) 이사가 말했다.

이반 스투박(Ivan Stupak) 우크라이나 미래연구소 분석가이자 전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요원은 이번 보안 사고로 인해 러시아가 핵심 프로젝트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가 노출되면 재검토하고 다시 작업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고 그는 콘투르(Kontur)에 말했다.

‘단순한 홍보용 과시이자 위협용 행보’

덴마크와 독일 기자들이 입수한 문서들은 러시아 핵무기 현대화 사업의 실체를 보여준다.

조사 결과, 러시아 전역에서 새로운 핵시설들이 건설되었으며, 일부 오래된 기지는 철거 후 다시 지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분석가들은 이러한 시설 확장이 군사적 필요보다는 위협을 위한 행보에 더 가깝다고 평가한다.

소련과 우크라이나 참전 용사이자 군사 분석가인 우크라이나 예비역 대령 올렉 즈다노프(Oleg Zhdanov)는 콘투르에 “이것은 러시아가 벌이는 홍보용 쇼이자 세계를 위협하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이런 군사력 과시를 통해 심각한 경제난을 은폐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즈다노프는 “러시아는 설령 나무 신발로 양배추 수프를 만들어 먹어야 할 상황이라도, 세계가 두려워하도록 미사일 생산을 멈추지 않을 나라”라고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취약한 공격 지점’

수백만 건에 달하는 문서들 속에서, 기자들은 러시아 군사력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는 자료들을 발견했다.

드미트로 즈마일로는 “핵 위협에 대해 예전처럼 크게 경계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렌부르크 주 야스니에 위치한 전략 미사일군 기지의 설계도가 온라인에서 확인됐다. 이 기지는 2019년부터 아방가르드 미사일 시스템을 운영해 온 곳이다.

덴마크 매체 단워치는 이 시스템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서방과의 군비 경쟁에서 추진하는 야망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언뜻 보면 아방가르드 시스템은 강력한 최신 무기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구소련 시절 군수 산업 단지가 우크라이나 엔지니어들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무기다.

러시아의 핵무기 체계에 대한 회의론은 여전하다.

“그 미사일이 실제로 아직도 날아가고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러시아가 주장하는 기술적 성능을 그대로 갖췄다고 보기 어렵죠. 불라바 미사일은 20년 동안 러시아의 기대대로 날아간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드러난 유출 문건은 미사일 성능 자체를 확인해주지는 않지만, 전력 공급, IT 시스템, 수도, 난방, 환기, 보안 등 핵심 기반 시설 전반에 걸친 상세 정보를 담고 있다.

영국 정보장교 출신 필립 잉그램은 “전기가 어떻게 흐르고, 물이 어디서 오는지, 시스템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취약 지점을 식별해 공격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지에서의 내부 일상의 모습

이 문서들은 드물게 러시아 군사기지의 일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병사들이 식사하고, 잠자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위치까지 상세히 담고 있다.

문서에는 휴게 공간과 운동 기구는 물론, 병사들이 여가 시간에 즐기는 체스와 체커 같은 게임까지 묘사되어 있다.

방호 장비 저장소와 무기 보관함의 위치까지 지도에 나타나 있어, 기지의 보안 배치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이번 문서 유출은 러시아 핵시설의 전술적 보안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의 ‘무적 신화’ 그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즈마일로는 이번 문건들이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의 방어 체계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자국의 전략을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자료들이 “우크라이나에도 최소한 그에 못지않은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이미 러시아 당국자 암살과 주요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수행한 바 있다.

“완곡히 말해, 러시아는 대비하고, 통신 프로토콜을 수정하며, 내부 훈련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즈마일로는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출이 단순한 보안 취약점을 넘어서 푸틴 체제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캡차 *